민음활성
: 독자의 소리를 담다

민음사

구매 가능 매대 D

우리들의 농경 사회

글.
이소정
출판사.
민음사
발행일.
2026년 4월 27일
ISBN.
978-89-374-4933-8
가격.
18,000원

소개글

제3회 〈연세-박은관문학상〉 수상작 이소정 장편소설 『우리들의 농경 사회』가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2023년 ㈜시몬느 박은관 회장의 기부로 제정된 〈연세-박은관문학상〉은 수상자에게 국내 문학상 최고 수준의 고료(총 1억 원)를 수여하는 등 한국문학의 세계화를 위한 실질적인 지원을 목표로 한다. 『우리들의 농경 사회』는 우리가 오래도록 잊어 왔던, 약동하는 삶의 감각을 되살려놓는 문장과 전개로 “공통 감각이 사라져 가는 이 시대의 상처에 걸맞은 회복과 생존의 서사를 보여줌으로써 구원의 의미를 탐색했다.”라는 평을 받으며 수상작으로 선정되었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가치가 소멸되어 가고 원리나 과정은 보이지 않는 곳으로 감춰지며 욕망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몸을 불리는 지금, 소설가 이소정이 내놓는 미래는 만질 수 있고 땀이 흐르며 절기와 호흡하는 삶을 되살리는 데 있다. 소설의 목차가 소한, 우수, 경칩 등 절기로 구성되고, 인물들이 직접 삽을 들어 어두운 과거는 땅 밑에 파묻고는 그 위에 고추며 들깨며 감자를 심고 가꾸고 거두는 이 작품은 어디로 발을 내디뎌야 할지 혼란스러운 이들에게 하나의 생생한 이정표가 되어 줄 것이다. ■탈출로부터 시작되는 이야기 『우리들의 농경 사회』는 어둡고 엄혹했던 세계에서의 탈출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선지와 문복, 그리고 ‘나’는 당장이라도 퍼질 듯한 다마스를 타고 어느 산으로 향한다. 세상을 떠난 친구가 셋에게 남긴 유산과도 같은 땅이 그 산에 있을 거라고 굳게 믿으며. 선지와 문복, 그리고 ‘나’는 갈 곳이 없었던 아이들로, 각자의 사정으로 흘러든 한 기도원에서 만난 사이다. 기도원에서 그들은 ‘어머니’를 섬기며 낮과 밤을 알 수 없는 어둠 속에서 지내 왔다. 무릎을 꿇고 하염없이 기도하거나 울고, 낯선 이에게 문을 함부로 열어 주었다는 이유로 창 없는 방에 갇혀 벌을 받고, 간절한 기도로 로또 번호를 알아내라는 어머니의 명령에 숫자를 읊어 대는 사이 세 인물은 몸만 훌쩍 자라 버린 어른아이가 되었다. 다음 생을 향해 달려 나가는 다마스 짐칸에는 그들 셋의 친구를 죽게 만든, 더 정확히 설명하자면 그렇게 만들었다고 믿고 있는, 한 남자가 결박된 채 실려 있다. 그들이 기원하는 땅은 바람대로 그곳에 있을까. 그 땅은 그들을 어둠에서 구원해 줄 수 있을까. ■정직하게 흘러가는 땅의 시간 마침내 도착한 곳에 구원은 없었으나 듣던 대로 맹지가 있었다. 빈 땅은 황토 집 한 채를 품고 있었는데 선지와 문복, 그리고 ‘나’는 황토 집에 있던 마른 멸치로 끼니를 때우며 하염없이 시간을 흘려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그들 앞에 자신을 ‘구순태’라 소개하는 한 남자가 등장한다. 그는 일을 하면 먹을 것을 주겠다며 셋을 농사의 세계로 끌어들인다. 땅의 일을 하자 시간이 땅의 속도로 흘러가기 시작한다. 냉이가 죽고 보리가 익는 입하(4월)에는 감자를 심고 완두콩 씨를 뿌리는 일로 하루를 다 보내는가 하면, 국화가 노랗게 피고 초목이 누렇게 지는 한로(9월)에는 참깨를 털고 들깨를 짜 들기름을 얻는다. 땅의 시간은 정직하고 넘침이 없다. 때가 되면 씨를 뿌리고, 다시 또 때가 오면 뿌린 만큼 거둔다. 농경 사회 바깥에 넘쳐흐르는 욕망의 물결이 땅을 붉게 물들이거나, 그들을 ‘새벽 배송’의 물살에 휩쓸리도록 만들지만, 땅의 속도로 세상에 뿌리내리며 비로소 자라나기 시작한 그들은 잠시 흔들리다가 곧 다시 땅으로 돌아오게 된다. “오래된 삶의 방식으로 지금의 우리와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을 함께 바라보고 싶었다.”라는 작가의 말처럼 『우리들의 농경 사회』는 가장 정직하고 가장 적당한, 그리하여 가장 세계다운 세계를 우리 앞에 펼쳐놓는다. ■손으로 만지는 삶 해가 언제 뜨고 지는지 모르고 살아가는 것, 영원히 닿지 못할 대상을 스스로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바라고 또 바라는 것, 다른 이의 욕망에 삶이 통째로 흔들리는 것. 바로 『우리들의 농경 사회』의 세 주인공이 ‘어머니’가 군림하는 기도원에 살던 시절 참고 견뎌 내야 했던 현실이다. 그런데 이는 도시에서 삶을 영위해 가고 있는 수많은 우리에 대한 은유이기도 하다. 우리를 매일같이 괴롭히는 ‘시간에 쫓기고 있다는 감각’은 과정과 원리를 생략하거나 감춘 채 결과물만을 마주하게 하는 도시의 작동에서 기인한다. 구순태가 선지와 문복, 그리고 ‘나’에게 내건 조건인 “산에서는 나이, 출신, 과거는 무시된다. 누구나 똑같이 땅에 무릎 꿇고, 똑같이 손에 흙을 묻힌다.”, “싸워서 진 자는 침묵하고, 이긴 자는 나무를 심는다.”에는 단어마다 생명력이 넘친다. 세 인물이 어둠의 방에서 벗어나 다다른 곳이 손으로 심고 손으로 거두는 세계라는 사실은 우리로 하여금 자신도 모르는 사이 빼앗긴 삶에 대한 사유를 되찾게 만들어 준다. 머리로 생각하는 대신 손으로 만지는 삶, 이소정이 그리는 미래는 여기에 있다.